사무엘하 4장, 이스보셋 부끄러운 다윗 정직한 사람

쉬운 목차

◈삼하4장, 부끄러운 자 이스 포셋 vs 정직한 자 다윗 각종 설교 요약

Ish-Bosheth라는 이름은 “부끄러운 자”를 의미합니다.

불명예스러운 사람

이름에 걸맞게 그는 참으로 “뻔뻔한 리더”이다.

참고로 David는 “친애하는”을 의미합니다.

인기 많은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양 떼를 사랑했습니다.

4장 2 사무엘, 에보셋의 죽음은 다르다.


그가 졸고 있을 때 그의 종 바아나와 라합이 그를 암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 다윗과 대조되는 리더십입니다.

◑1. 사람을 의지한 이스보셋 vs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

(사무엘하 4: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손이 약해졌고 온 이스라엘이 놀랐습니다.

이스보셋은 왜 낙담했습니까?
온 이스라엘(11지파)이 놀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지휘관 아브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항상 사람에 의해 살았던 사람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스보셋과는 달리 다윗은 사울에게 10년 이상 쫓겨난 후
그는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9절에서 이것을 인정합니다.


9 나를 많은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많은 환난에서 나를 건지신 이”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아나와 레갑의 범법(이스보셋의 참수)
다윗을 살려 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설명을 위한 것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을 죽이지 않고서도 다윗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즉, 다윗 자신이 지금까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온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 때문이 아니라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아나와 레갑이 말한 바와 같이
Ish Bosheth가 정말로 David를 죽이고 싶었더라도
이것은 David가 그의 삶에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사람은 용감합니다.

▲어딜가나 우리를 두렵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매일 뉴스를 봐도 온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과 범죄, 사고에 시달립니다.

또한 YouTube에는 소위 “전문 의학 지식”이 수천 개 있습니다.


위암, 대장암, 식도암, 췌장암, 폐암, 간암, 신장병, 뇌종양, 치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죽음에 면역이 아니다‘나는 떨며 산다.

더구나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도
그들은 부활이 불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처럼
“많은 환난에서 나를 건지신 이”누가 믿나: 9
쓸데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나는 사망에서 벗어나 삽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청년 스티브 소여의 이야기(재미있는 글)

(미국 대학생이 수혈 사고로 에이즈에 걸린 후,
“또 학교가 있구나!
”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께 갔습니다.

)

“그때 나(스티븐 소)는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 멋진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났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를 만나기 전의 “기독교인” 모습
‘외면은 경건하고 속은 속물이며 도움이 되지만 자만심이 강하다.


남을 욕하는 데 능한 부정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내 룸메이트(이하 친구)는 다르다.

그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번이 처음입니다.


죄인을 값없이 용서하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친구들과 해변에 갔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가 그곳에서 만난 낯선 청년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나는 그와 합류하고 복음을 들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은 낯선 젊은이들에게 환영 기도를 인도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환영기도에 동참하고 따랐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잠이 들었을 때 “다음날 살아있을까?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잤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원히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영원히 놀라운 사랑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 당시 부모님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다.


기도하다가 일어난 일처럼 내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저를 멀리 떨어진 대학 기숙사로 보냈습니다.

친구들이여, 당신의 자녀들은 불치병으로 죽고,
부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그런 부모의 마음… 어디까지 무너질까?

예. 인간은 여러모로 무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관련 설교 / 신의 평화 ()


위 설교의 요점은 “많은 죽음을 경험한 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님은 우리를 온갖 ​​환난과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많은 환난과 위기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재앙을 건너는 이론)

그러므로 역경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하십니다.

간단히 말해, 여러 번 출산한 산모들
이것은 당신이 더 이상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Ish Bosheth가 “불명예스러운 사람”인 이유는,
그는 “사람(아브넬)을 의지하다가 죽은 후에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스보셋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11지파)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나

오늘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오 하나님, 당신의 종에게, 모든 의존에서 나를 끊으소서.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종들에게 ‘물질적 훈련’을 주십니다.


모든 재료와 의존하는 재료를 가져 가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이 쉽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그것을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물질 훈련이 끝날 때까지!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환생하기 전에 신체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의 모든 정보를 제거하십시오!

그러나 현자는 체력 단련을 통해
필요한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노하우)을 물질적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유죄를 인정합니다.


빌립보서 4:12′나는 겸손할 줄 알고 부자가 될 줄 압니다.


만족, 배고픔, 부자와 가난한 자
나는 모든 비밀을 배웠다’

그러니 어찌 사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의지하다가 차질이 생기셨다면 죄송합니다.

.

그래야만 사람들이 단순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다윗은 일찌감치 그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라마에 있는 나욧 사람 사무엘이 처음에 사울에게 쫓기자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놉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모압 왕까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아기스 왕을 찾았습니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통해 다윗은 배웠습니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의 말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25장 29절 “누구든지 일어나서 내 주의 생명을 찾으면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의 강보에 싸이리이다
내 주 여호와의 원수들의 생명이 물매같이 던져지리이다 ”

오늘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의 죄를 자백하기 원합니다.


9 많은 환난에서 나를 건지신 살아 계신 주님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을 만나고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죽겠습니다!

◑2. 이쉬 보셋은 친구에게 배신당했다 vs. 다윗에게는 진짜 친구가 있었다

이스보셋의 죽음의 비극은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은 군대장관(군지휘관)이 아니라 지휘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가장 충성스러운 무장이자 왕의 보좌관
왕을 배반하고 죽이고 목을 베어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5 베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해가 돋을 때에 일어나 길을 가니라
그들이 이스보셋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침 침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여기서 “태양 전후”는 “정오”와 “정오”를 의미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관습과 관습으로 볼 때 이 시간은 그 지역 사람들이 낮잠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2:29, 32, 3:26).
이 습관은 사막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보셋은 이때 낮잠을 잤다.


Matthew Henry가 설명했듯이 Ish Posset의 극도의 게으름을 보여줍니다.


행동이 아닌 것 같아요.

한편 이스보셋의 두 족장 르갑과 바아나는 이때 그는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렀다.


그가 잠든 사이 그를 암살한 것은 고의적인 행위였다.

6 레갑과 그의 아우 바르나는 밀 줍는 체하고 집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배를 찔러 도망쳤다’

“밀을 따러 온 척”
두 경찰관은 어떻게 Ish Possett의 침실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설명했습니다.


밀이 군인들에게 주는 식량의 양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은 밀을 구하러 왔다고 핑계를 댔다.


그는 무사히 이스보셋의 침실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들은 종종 군대 수송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호원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 진정한 친구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100세까지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미소로 인생을 마감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대부분은 병원 침대나 요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혼자 그리고 혼자 끝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년에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이 나의 말년의 행복이다.


결국 노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관계’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 믿을 수 있는 친구, 충성스러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즉, “내가 아첨꾼, 배신자, 위선자를 걸러내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만 남겨둘 수 있을까?”

다윗은 많은 용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타겟 11:10 “이들은 다윗의 용사들의 지도자들이다.


이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은 다윗이 왕국을 얻는 것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를 왕으로 삼고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대하 12:18) 그 때에 성령이 아마새 족장 삼십 명을 둘러싸며 이르시되
이새의 아들 다윗이여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할테니 편히 쉬세요
당신이 안전하고 당신을 돕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신이 당신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영접하여 군대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요점은 ‘다윗은 열심으로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많이 모았다.

Ishboset 주변에서 Abner는 그의 권한 확장에 눈이 멀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인을 배반한 바아나와 레갑이 뭉친다.


이쉬 보셋은 하나님을 정직하게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레갑과 바아나의 열정을 보십시오. 그들의 열정은 거의 농담입니다.

7 그들이 집에 들어가 보니 이스보셋이 침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8 그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 왕에게 드리고 왕의 생명을 구하더라
이것은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당신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입니다.

두 사람이 하룻밤을 걸어서 아라바를 거쳐 헤브론에 이르렀다.


마하나임에서 헤브론까지의 거리는 약 95km입니다.

그래서 Regab과 Baana는 밤새 쉬지 않고 약 20시간 동안 시속 5km로 운전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더 빠른 속도로 헤브론에 도착합니다.

거의 마라톤 선수가 된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열성을 놀랍게 여깁니다(롬 3:13-17).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열정은
이것은 그들의 죽음을 앞당길 뿐입니다.

▲사람들 앞에 선 다윗의 ‘정직함과 믿음직함’
사람들의 아첨이나 아첨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Baana와 Rechab의 아첨을보십시오.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주 왕의 원수들을 사울과 그 자손에게 벌하시리니
당신은 돈을 지불했습니다’ : 8

다윗은 그들의 “아첨”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큰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왕 이스보셋을 죽였습니다.


둘 다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팔다리를 잘라 전시용으로 걸어 놓습니다.

:12

그들은 손과 발로 죄를 짓고 그들이 벌을 받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었습니다.

과거에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비새의 아첨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삼상 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왕의 원수를 벌하셨나이다
당신이 그를 당신의 손에 맡겼으니, 제발 창으로 그를 찌르게 해주세요.
영원히 땅에 심게 하소서 그리하면 두 뿌리를 더 찌르지 아니하리이다 ”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나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손을 들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느냐?

10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는 그를 치든지 네 날이 이르든지 아니면 나가서 싸우다 죽을지니라 ”

주변 사람들은 늘 이렇게 데이빗을 지켜보고 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의롭게 행동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는 위대한 인물들이 모여들어야 합니다!

▲ 목회는 돈이 없고, 마음을 얻다
아래 최광 선교사님의 간증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선교사입니다…교사도 신부도 아닙니다.


우선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을 줄 수 없습니까?

밭을 팔아 자식 교육에 전 재산을 다 써도
다른 사람들이 꾸짖든 말든 의식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기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주십시오.

돈을 주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든다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돈을 줍니다…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신부를 믿지 않는다.


남한 사제들도 탈북자들을 믿지 않는다.

상호 불신의 상태에서 탈북자들이 돈 때문에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모여도 성경을 통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재물을 모으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잠 18:24 “친구가 많은 자는 해를 입느니라.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더 가깝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슬퍼하지마,
“내가 그들의 진짜 친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어떤 신자들은 선교사들을 위해 매일 정오에 10분씩 기도합니다.


점심시간을 정했는데 몇시에 약속을 잡았는지
10분이 아니라 5분 전에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모로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
“선교사의 진정한 친구”, 즉 “기도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선교사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세요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나의 영성은 깊어집니다.


기도의 깊이와 폭이 커질수록… 먼저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 두 명의 목격자가 있다.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보내실 때 항상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한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다른 사람이 기도하고 돕는다.

그러므로 그는 “친구가 없다”,
“나는 삼손처럼 혼자 일한다!
”(이러한 유형 중 일부는 존재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

이러지 마,

“내 짝, 내 짝은 누구지?” 하고 기도하며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둘씩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증인”이 있는 이유입니다!

“한 증인”이 아니라 “두 증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1:3

<친구와 관련된 게시물 보기>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왕 “Ish Bosheth”
이름에 걸맞게 “부끄럽게”
그는 부하 장군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앉아”라는 조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구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isposite
그의 아버지 사울과 세 형은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갑자기 그는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으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는 불행을 만났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한 7년의 마지막 2년에 관하여.
나머지 5년은 아브넬이 다스린 것으로 추정)

날 둘러싸고 날 따라와 like me love me 내 주위에 모여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진실하다면 모든 일에 공평합니다…내 주변에서
진정한 친구가 모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첨을 잘하지 못하고 사심없고 일관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내가 거기 가서 날 이용하려 하면… 가신들만 남을 거야.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상종”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선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선교지에서 현지인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아, 모두가 등을 찌르려 하고, 모두가 널 배신하고 있어…
(실제로 현지인들이 쇼핑할 때 일어난 일)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자기 양 떼를 의심하여 ​​보면…
거기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시 그는 말씀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요한복음 15장 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니 이것이 나의 계명이니라.
그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즉, ‘순교자’의 각오로 지역민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아침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종들처럼 때릴 것입니다.


칼로 겨누는 사람도 있지만 (찌르지 않아도 협박을 노린다)
순교자의 각오로 아침을 무사히 보냈다.

그날 오후, 다시 한 번 ‘순교의 결단’으로
동네 형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13

그날 오후도 무사히 지나갔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그날도 “다시 순교를 각오하고!
”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결국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던 형제들이 하나 둘씩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선교사들이 요한복음 5장 13절을 따랐기 때문입니다.